6월 10일 음성과 증평을 한꺼번에 다녀왔다. 그것도 12시가 다되어 천안에서 출발해서 해지기전에 돌아왔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면 좋겠다. 그리고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처럼 세련되거나 완전하게 남아있는(한독의약박물관에 의학관련 서적들이 있기는 하다.) 것은 없으나 이 지역의 특징을 가지고 있거나-주로 고려시대이다.- 투박한 장인들의 솜씨를 볼 수 있어서 눈이 편하다.
음성 보현암 석조아미타여래좌상과 석조관음보살의좌상(椅坐像)
조그만 암자에 조그만 불상 두 기가 나란히 있다. 아미타여래좌상은 둥근얼굴에 두건을 쓴듯한 머리모양이 라마불교의 흔적인듯하다. 아미타 수인을 하고 있고 군의(바지)와 매듭이 뚜렷하다.
그 옆에는 머리에 삼산형의 관을 쓰고 있어 보살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암자의 곳곳에는 많은 석재들이 방치되어 있는데 아마도 예전에는 제법 큰 규모의 절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탑의 옥개석이나 연화무늬 등으로 볼 때 법당 안에 있는불상보다 훨씬 정교하다. 고려 이전의 존재 흔적일 가능성이 크다.
미타사 마애여래입상
일주문을 들어서면 큰 지장보살상이 서있다. 그리고 먼저 납골당이 있고 그 옆길로 돌아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머리에는 모자를 섰고 얼굴과 어깨 부분에 돋을새김을 하였고 나머지는 간략히 음각으로 새겼다.
경주 삼릉계곡 마애불좌상이 얼굴과 어깨 부분을 돋을 새김하고 아래부분을 음각처리한 것을 두고 부처가 돌 안에서 몸을 일으켜 밨으로 나오는듯한 모습이라 하는데 이 불상도 그러하다.
손모습(수인) 마모가 심해 정학히 알아보기 힘들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맞지 않고 규모가 큰 것으로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더 올라가면 법당이 있다하였으나 나는 발길을 돌렸다.
읍내리 삼층석탑과 오층모전석탑
음성 시내의 설성공원내에 있다. 두 기 모두 본래의 자리는 아니다. 3층석탑은 단층기단-탑은 대부분 2층 기단이다. 문화재사전 참조-위에 3층으로 탑을 쌓았다. 탑의 몸돌에는 우주(隅柱- 기둥이라 생각하면 됨)가 있고, 지붕돌은 3층의 받침이 있다. 안내문과는 다르게 1, 2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분리되어 있는듯하고 확인할 수는 없지만 찰주공이 있다고 한다.
모전석탑(模塼石塔)은 재료는 돌이나, 벽돌탑을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경주 분황사 석탑니 있고- 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쌓아 올렸다.- 안동, 의성, 선산, 경주에 주로 분포한다. 머리 속에 벽돌로 탑을 만든다면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상상해 보시라. 몸체를 쌓고 지붕을 벽돌로 만들려면 아래 위 모두 층급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돌로 탑을 만들면 일부러 층계를 만들 필요가 없는데도 벽돌탑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왼쪽의 탑의 우주와 지붕돌 경사면은 목조건물의 흔적이요, 왼쪽의 층급받칩과 오른쪽의 지붕돌 층급은 모두 벽돌탑의 흔적이다. 오른쪽은 벽돌탑의 흔적이기에 당연히 우주와 탱주(가운데 기둥 모양)는 없는 것이다.
모전석답의 1층 몸돌에는 감실을 조각하였다.
마송리석장승
마을 앞 개울가를 따라 3기가 있다. 마침 내가 갔을 때 1기는 이전공사 중이라 볼 수가 없었다. 네비로 찾아가는데 애를 먹었다. 아래 사진에서 마송3거리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마을이다. 법화사 옆길로 들어서 끝까지 가서 주차한 후 오른쪽 둑길로가면 첫번째 장승이 있다. 가장 접근하기 좋은 곳은 지도의 붉은선이 있는 곳에 주차하고 마송교를 건너 접근하는 방법이다.(붉은 점이 석장승이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