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답사 때 추위에 혼나서 중무장을 하고 나섰다.
게다가 가는 길을 잘못 잡아 차가 밀려 3분이나 늦게 도착하니 차가 문을 닫고 출발하고 있었다. 차에 올라타니 모두들 시선이 내게로 꽃힌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학예팀장이 "오늘 날씨가 너무 좋죠"한다.
이번에도 실패구나.
동문을 거쳐 남한산성에 도착한다. 점심 때까지 걷는단다. 제법 경사도 있단다.
내복까지 입었는데 "이를 어째"다. 벌써 몸에서 땀이 확 올라온다.
오늘 우리가 걸을 코스는(10:00 ~ 12:30)
로타리 - 행궁 - 수어장대 - 암문 - 우익문(서문) - 국청사 - 숭렬전 - 침괘정 - 전승문(북문) - 현절사 - 연무관 - 종각 - 천주교성지 - 식당
남한산성과 다산선생에 관해 학문적 내용 - 너무 많아 - 은 빼고 사진 위주로 올린다.
사진에 대한 설명은 모두 <<경기도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에서 가져왔다.
한남루는 상, 하궐을 포괄하는 행궁 외곽 담장의 정문에 해당하는 행궁 외삼문의 누각이다. 정조 22년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한남루라는 누문을 대문으로 세웠으나 20세기 초반에 붕괴되었다. 한남루란 한강 남쪽 성진(城鎭)의 누대라는 뜻이며 프랑스 영사 프랑뎅(Hippolyte Frandin)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2011년 같은 위치에 한남루를 복원하였다.
앞쪽의 기둥 받침돌은 본래의 것인데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았단다. 예를들면 하나는 남한산초등학교 교문으로 사용하고 있었단다. 기둥 뒤를 살펴보면 어느 것인지 알 수 있다.
행궁은 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그냥 둘레를 돌아 좌전을 거쳐 수어장대로 향했다. 좌전은 종묘의 구실을 한 곳이다.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 행궁은 1909년까지 잘 남아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다. 1999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2002년에 상궐에 해당하는 내행전을 준공하고 2004년 행궁 좌전을 준공하였다.
수어장대로 향하는 길에 성벽을 만난다. 멀리 서울과 성남이 보인다.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에 있던 5개의 장대(동장대, 서장대, 남장대, 북장대, 외동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다. 청량산 정상(해발 482m)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 안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하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 상층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양식의 2층 누각이다. 지붕은 상하층 모두 겹처마루를 둘렀으며 사래 끝에는 토수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용두를 올렸으며 용마루에는 취두를 올렸다. 건물의 기둥은 높이 60cm의 팔각장주초석 위에 올려져있고, 포는 주심포 양식의 이출목 익공식이다. 영조 27년(1751) 2층 누각으로 증축하고 외부에 ‘수어장대(守禦將臺)’ 내부에 ‘무망루(無忘樓)’라고 편액을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무망루는 병자호란의 치욕과 북벌을 준비하다 이루지 못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듯으로 영조가 지은 것이다. 수어장대 오른쪽에 보호각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수어장대 옆에는 '청량당'이 있다 이회장군 부부의 전설이 녹아있는 곳이다. 내부는 들어갈 수가 없었고, 예전에는 굿을 하던 신당이었단다.
남한산성에는 16개의 암문(暗門)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다.
이승만이 이 곳을 즐겨 찾았단다. 수어장대 옆에는 직접 심은 전나무가 있었고, 제 6암문 옆에는 이승만송수비 초석이 있었다. 아무런 표지판이 없어 무심히 지나지만 그 양반이 세월을 호령하던 시절에는 이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진은 58년 故 임인식 작가가 찍은 것으로 연합뉴스에서 가져왔다.
북문은 행궁 우측에 있어 우익문이라 했고, 정조때 개축하였다. 서울에서 접근하는 가장 빠른 곳이란다.
서문에서 안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한경직 목사 우거처와 숭렬전(백제 온조사당), 침괘정(군기고?)을 거쳐 북문으로 오른다.
날씨는 춥기는 커녕 봄처럼 따뜻하다. 두꺼운 옷이 거추장스럽다.
북문의 안쪽과 바깥쪽의 모습이다.
북문에서 벌봉쪽으로 성벽을 따라 오른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가이드는 조금만 걷겠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한다.
오르는 길 내내 잔뜩 껴입은 옷이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하남시 쪽의 경관이다.
현절사 방면으로 내려와 로타리를 지나고 연무관을 지난다. 바로 옆에는 혁신학교의 시조격인 남한산초등학교가 있다.
여기에도 천주교의 슬픈 이야기가 있다.
식당으로 가는 도중에 가이드 왈
"여기는 닭요리가 유명합니다. 그 중에서도 <<초가>>가 가장 유명합니다. 안타갑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갑니다."
"그리고 두부요리도 유명한데 <<황선홍>>이 제일입니다. 축구선수하고는 관련이 없구요. 다음에 오시게 되면~"
그리고 우리를 데리고 간 집은 여기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모든 메뉴를 다 한다고 하는- 식당이다.
이건 단지 내 취향이 이럴 뿐 잘못하면 이 집을 폄훼하는 게 되겠다.
단체로 밥을 먹으려니 어절 수 없었을 것이다. 만두전골을 먹었다. 잔뜩입은 옷때문에 땀 많이 흘렸다.
주차장 한 켠에는 신익희 동상이 있었다.
차를 타고 다산선생을 만나러 간다.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다산문화거리라 이름하고 '다산문화관', '다산기념관', 생가, 묘소가 있다. 문화관과 기념관이 따로 있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거니와 실학박물관도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생가 옆에는 동상이 있고, 언덕 위에 묘소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두물머리로 간다. 사진을 위해서라면 새벽이어야 했겠지만 늦은 오후에 도착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다.
관광객들로 빼곡하다.
붉은 원이 다산 유적지이고 파란원이 두물머리이다.
입구에 주차장이 있으나 대형버스는 들어갈 수 없다.
핫도그가 유명하단다. 3,000원이다. 같은 이름의 가게가 있었다. 아래 사진의 집이 가장 맛나단다.
내 입에는 그냥 핫도그
'문화재 답사 > 천안박물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_영월군 (0) | 2019.12.03 |
---|---|
천안 박물관_음성군 등 (0) | 2018.09.08 |
천안박물관_거창군 (0) | 2018.06.02 |
천안박물관_옥천과 영동 (0) | 2018.04.30 |
천안박물관_창덕궁과 서오릉 (0) | 2018.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