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청이 있는 곳의 행정이름이 동천동이다. 동천동의 동쪽에 자그마한 산이있으니 금강산 또는 소금강산이라 한다. 탈해왕릉과 백율사, 굴불사터가 있다.
이차돈이 순교할 당시 목을 치자 그 목이 금강산에 떨어졌다고 하는 전설이 있고, 실제 이차돈 순교비(경주박물관 소재)가 이 산에서 발견되었다.
백율사로 올라가는 초입에 오늘 우리가 알아보기로 한 굴불사터가 있다.
글의 순서 |
1. 찾아 가기 2. 사방불에 대하여 3. 굴불사 이야기 4. 굴불사 사면석불 5. 마무리 |
1. 찾아 가기
굴불사터 입구에 작은 주차장이 있다. '백율사주차장'을 입력하면 된다.
대중교통은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청가는 버스를 타면 되는데 여러 곳을 들러서 가기 때문에 시간을 꽤 잡이야 한다. 경주시청에 내려 굴불사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경주시청을 등지고 오른쪽에 보건소가 있고 우회전해서 쭉 직진하면 굴불사터이다.(약 5분)
2. 사방불에 대하여
불교에서는 온 누리의 핵심 되는 곳을 영원히 변치 않는 곳이라 하여 진여(眞如)라 부른다. 진여는 빛 그 자체이며 형상으로 나타났을 때 비로자나(大日如來)여래불이 된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찬란한 빛에 의해 이루어진 수많은 부처님의 정토를 화엄 세계라 하는데 「금광명경」에 의하면 동방에는 아촉여래께서 다스리는 묘희국정토가 있고, 서방에는 아미타여래의 극락세계, 남쪽에는 보생여래의 환희 세계, 북쪽에는 미묘성여래의 연화장엄국정토가 있다 하였다.
이렇게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에 이루어진 불국을 사방사불정토라 부른다.
사방불의 이름은 경전에 따라 다르므로 정확하게 말할 수 는 없으나 우리 나라의 사방불은 동방에 약사 여래상(동방유리광세계), 서방에 아미타 여래상이 배치된다. 남방과 북방에 배치되는 부처님은 일정하지 않으므로 그 이름을 알기는 어렵다. 또한 신라 시대에는 인도나 중국의 경전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나라의 신앙에 알맞도록 자유롭게 불상을 배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충남 예산 사방불이 있고, 경주에는 굴불사지와 남산 칠불암이 있다.
3. 굴불사 이야기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이 하루는 북쪽 산기슭의 백률사를 찾았다. 그 때 땅 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서 파 보니 이 사면석불(四面石佛)이 나타났다’ 고 적혀 있다.
1985년에 한 발굴 조사에 의하면 사면석불을 중심으로 정면 1칸, 측면 3칸의 법당터가 확인되었다. 동사(東寺)라고 새겨진 고려 시대의 명문 기와가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 한때 동사라고 불리워졌을 가능성이 있고, 또한 조선 시대의 기와도 수습됨으로써 이 건물이 조선 중기까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4. 굴불사 사면석불
굴불사사면석불은 4면의 방향에 따라 서쪽에 아미타여래삼존불(阿彌陀三尊佛), 동쪽에 약사여래(藥師如來), 남쪽에 석가여래와 보살상, 북쪽에는 미륵보살과 11면6비관세음보살상(11面 6臂 觀世音菩薩)을 배치시킨 사방불(四方佛)이다.
1) 서쪽 면
서쪽에는 아미타여래 삼존인데 본존은 몸체만 바위 면 그대로 조각하고 머리는 따로 만들었으며, 두 협시보살은 딴 돌로 만들어 세웠다.
본존불의 머리는 모자를 쓴 것 같이 얼굴에 비해 크게 표현되었고, 오른손은 떨어져 나갔으며 왼손은 앞허리 부분으로 가져와서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다. 법의는 통견(두 어깨를 모두 가림)이며, 배 부분에 군의(속바지)의 띠가 보이고 옷주름을 얇은 U자형의 층단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세련된 조각은 아니나 장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본존 좌·우의 보살은 본존불과는 달리 별개의 돌에 조각되어 뒷면에도 조각을 한 완전한 입체조각이다.
좌측은 머리에 화불이 있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정병(淨甁)을 들고 있어 관세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우측 대세지보살은 파손이 심하여 어깨 뒤로는 보관 파편만 보이고, 얼굴 부분은 완전히 없어졌다.
지금은 두 보살상의 발목 아래가 묻혀 있으나 둥근 연꽃 좌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동쪽 면
동쪽 면 불상은 약함(藥盒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두 줄의 음각선으로 구분하였으며 그 바깥에는 화염문(불꽃무늬)으로 되어 있다.
머리 위에는 크고 둥근 육계가 있으며 고개를 조금 숙인 얼굴에는 자비로운 미소가 보인다. 귀는 길어 어깨에 닿을듯하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올려 시무외인을 하고 있는 듯하며 왼손은 배에다 대고 손바닥에는 약함을 들고 있다.
3) 남쪽 면
남쪽에는 머리를 잃은 여래상과 얼굴에 마멸은 있으나 거의 완전한 보살상이 양각되어 있다. 불상 오른쪽의 바위 형태로 봐서 원래는 삼존불이었던 것 같은데, 현재는 2구만 남아 있다.
왼쪽 여래입상은 통견의 법의를 걸치고 있는데, 배 부분까지 U자형의 옷주름이 늘어지다가 양쪽 다리에서 Y자형으로 갈라져 있다. 이런 형식은 통일신라기의 금동불상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다.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은 마멸되었으나 이목구비가 단아한 표정은 보인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으며, 드러난 가슴에 목걸이를 표현한 듯하다. 천의(天衣)는 가슴과 허리 및 무릎에서 세 번 가로질러 걸쳤다.
몸의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유려하게 흘러내린 천의의 처리 수법 등으로 보아 사면 석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양식을 보이고 있다.
4) 북쪽 면
북쪽에는 보살상 2구가 있는데 왼쪽은 11면6비(十一面六臂) 관음보살상이다. 이 보살은 선각으로 되었으면서 마멸이 다른 불상들에 비하여 극히 심하여 조각을 잘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 위에 9면과 보살의 얼굴 옆 양쪽 귀 옆에 2면이 있어 11면이며, 팔은 두 어깨위로 쳐들어 올린 1쌍과, 가슴 앞으로 모여진 1쌍, 허리 옆으로 해서 아래로 내려진 1쌍 해서 모두 6개의 팔이 있다. 이와 같은 불상은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불상 옆에는 석면을 약간 파서 감실(龕室)을 만들고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둥글고 예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오른손은 겨드랑이 가까이 올려서 지물(持物)을 잡고 있는 듯하고, 왼손은 아래로 곧장 뻗어 옷자락을 잡고 있다. 감실에 화염문을 새겨 광배를 대신하였으며 대좌는 보이지 않는다.
5. 마무리
누군가가 그랬다. "아는것 만큼 보인다"고 찬찬히 살피다 보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대개는 한바퀴 휙 둘러보고는 발걸음을 돌리지만 얼굴모습도, 손모양도, 옷주름도, 광배도 다시 한번 더 살펴보자. 한 곳에 있는 불상들이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모르는 단어는 휴대폰으로 검색해보자. 눈에 들어오는게 많아진다.
별것 없지만 이 블로거에 '문화재사전' 편이 있다. 참조해도 좋겠다.
가까이에 괜찮은 식당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