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급해졌다.
내년 3월에 경주로 다시 내려가기로 결정하면서 천안 인근의 문화재 답사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11월 15일(금) 예산지역을 한바퀴 돌기로 했다.
늦게 출발하여 수덕사를 제외했다. 천안에서 출발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일정을 잡았다.
첫번째는 보물 394호로 지정된 예산 사면석불이다.
사방불을 조성하는 것에 대해 가장 쉽게 말하지만 중앙에 대일여래가 있고 동서남북으로 발현할 때는 다른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내는데 불교 경전이나 종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나타난다. 아마 모든 곳에 부처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라는 뜻이 아닐까. 석탑에 사방물을 조각하기도 한다.
경주의 칠불암과 굴불사지가 대표적이다.
주차장에는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고, 올라가는 길도 정비가 잘되어 있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길을 올라가면 보호각에 사면석불이 있다.
1983년 주민에 의해 발견되었다. 지금은 불두와 손은 없고 - 공주박물관에 3두가 있단다. - 훼손도 심하다.
남면 광배의 당초문이 서로 꼬이며 어울리고 있고, 화염문은 물결치듯 바깥으로 퍼져 나간다.
광배의 연화문이 백제초기의 양식을 띠고 있어 서산과 태안의 마애삼존불보다는 시대가 앞선것으로 보고 있다.
언젠가 온전한 모습으로 복원되는 날을 기대해보자.
예산의 석곡리 석탑과 미륵불은 마을회관 앞에 있다.
불상은 석주형으로 정수리 부분은 평평하고 손은 앞가슴에 모아져 있다. 보관의 중앙에는 화불이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본다.
석탑은 1층기단위에 3층으로 쌓았는데 3층의 몸돌은 없다. 1층 몸돌 남쪽에는 불상이 있고, 북쪽에는 문비를 새겼다. 작고 아담하지만 우주와 탱주가 있어 탑의 기본적인 형식을 잘 따르고 있다.
남연군묘 근처에 있었다. 상가리 미륵불과 보덕사를 찾아가는 길은 어려웠다. 길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내 차의 네비가 엉뚱한 곳으로 안내를 했다.상가리미륵불은 아래 사진을 참조해서 들어가는게 가장 쉽다.'다구래가든' 또는 '가야사의하루' 를 찍고 가자. 아래 사진에 주차를 하고 조금만 걸어가면 상가리미륵불공원이 있고 불상이 그기에 있다.이 미륵블도 석주(돌기둥)형태이다. 흥성대원군이 그의 아버지(남연군) 묘를 쓰기 위해 가야사를 불태웠는데 이 석불이 돌아 섰다는 설이 있다.양 팔을 몸에 붙이고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리고 왼손바닥은 배에 붙이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중앙에는 화불이 있다.
예산 보덕사는 덕산도립공원 주차장 맞은편으로 올라가면 된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숲길을 조금 올라서면 절이 나타난다. 삼층석탑 - 으로 길을 잡으면 엉뚱한 곳으로 데려간다. - 과 석등이 이 절에 있다.흥선군이 가야사를 불태우고 아버지 묘를 만든 후 고종이 즉위하자 그 은혜를 갚는다하여 보덕사를 세웠단다.석등은 대부분 없어지고 화사석만 남았는데 화창 사이에는 사천왕을 조각하였다. 석탑은 본래 5층이었는데 지금 3층만 남았단다.
그 옆에는 또다른 석재가 있었다. 송림사 부도는 대률(大栗)리에 있다. 경북 군위에도 "한밤"이라는 마을 있는데 한자로는 같은 이름이다. 주차를 하니 사람이 그리웠나보다. 산사를 지키는 멍멍이가 과도하게 환영을 한다. 아내를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한다. 혼자 부도로 향한다. 팔각의 지대석 위에 앉은 하대석에는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는 구름과 연주문 등의 다양한 문양들이 세련되게 표현되어 있다.
하대석 상부에는 연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중대석에는 구름과 용이 함께 어울려 조각되었고, 앞면에는 여의주를 중간에 놓고 2마리의 용이 마주하고 있다. 뒷면에도 두마리의 용이 있다. 상대석에도 연화문이 있고 2단의 괴임을 마련하고 탑신석을 올렸다. 탑신석에는 우주를 세우고 앞위로 용두가 있는 자물쇠를 표현하였다.
예산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상항리 석불이다. 이남규고택 옆에 있다. 50cm의 판석에 불상을 새겼다. 얼굴은 네모지며, 하체에 비해 상체가 강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얕은 선각으로 되었고 논, 코, 입이 중앙으로 몰려 있으며 평면적이다. 어깨에서 아래로 내려운 옷자락은 도식화되어 있고, 가슴에는 수평의 때 매듭이 보이고 복부 아래에도 바지 상단과 띠 매듭이 있다. 하체는 약식으로 표현되어 조악하며 결가부좌한 발 또한 어색하다. 판석이 자연스럽게 신광으로 되었는데 연꽃과 봉우리가 교대로 조각되었다. 조각의 수법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동생이 집이 가깝다. 뭘 먹을가하니 큰 놈이 "고기가 대세지요"한다.오랜만에 조카들과 함께 성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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