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수) 문화센터에서 각 반 실장- 내가 서예반 실장이다. 학교 다닐 때 못해본걸 지금한다. -모임이 있다고 갔더니 4층 강당이 캄캄하다. 문자를 다시 확인하니 다음주 수요일이다.
이것도 나이 때문인지 원~~
머리도 감고 옷입은 김에 아내를 구슬려 청양으로 향했다.
? 읍내리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197호)
청양 읍내리 우산공원 내 충령사 아래에 있다./ 청양군 청양읍 읍내리 15-37
우산(牛山) 이라는 지명은 산의 생김새가 마치 소가 누워 있는 것 같다는 데에서 생겨났으며, 기룡산(騎龍山)이라는 이름은 산에 있는 기암괴석의 모양이 마치 말을 타고 있는 용과 같다는 데에서 생겨났다. 우산에는 소와 관련된 지명이 많은데, 서쪽에 자리 잡은 마을은 쇠끼실이고 북쪽에 자리한 마을은 곱두실이다. 이들 모두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풀이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국지명유래집/ 국토지리정보원>
바로 앞까지 차로 갈 수 있다. 단 경사와 굴곡이 심하니 조심해서 올라가자.
본래 있던 곳은 알 수 없고 노천에 방치되어 있다가 이리로 왔단다. 그동안의 풍찬노숙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상세한 내용은 문화재청의 설명을 보자. 그러나 훼손이 심하고 전각안에 있어 설명과는 달리 알아보기 힘들다. 문화재를 열심히 공부하는 분이 아니라면 패스해도 되겠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따로 가지고 있는 독립된 불상이 삼존불(三尊佛)을 이루고 있다.
본존불은 당당한 체구의 불상으로 머리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고, 직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서는 강인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며 군데군데 옷 사이로 드러난 신체 역시 당당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발목 부분까지 U자형의 주름을 이루면서 내려오고 있으며, 다리 사이에는 바지 자락이 표현되어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배(舟) 모양으로 불상과 같은 돌로 만들었는데, 파손이 심해서 세부표현을 확인하기 어렵다.
왼쪽 협시보살도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부러진 것을 복원하여 놓은 것이다. 얼굴은 본존과 같은 형태지만 훨씬 부드러우며, 허리를 왼쪽으로 약간 틀어 몸의 중심을 본존쪽으로 두고 있다. 옷은 밑부분이 넓게 퍼져 무겁고 둔중한 느낌이 든다. 오른쪽 협시보살 역시 모든 면에서 왼쪽과 같으나 윤곽이 둥글고 앳된 모습이 다르다.
당당한 신체표현, 강인한 신체묘사, 유려한 각선 등에서 상당한 기량을 보이고 있지만, 평판적인 신체묘사와 형식화된 조각기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상만 있는게 아니고 앞에는 탑과 비석받침(?)도 있다. 탑도 불상과 마찬가지로 떠돌다 여기에 안착한 것으로 되어있다. 기본적으로 신라탑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본다면 1층 기단이 없어진것 같으며, 규모는 간결하나 문비 門扉- 문짝을 말한다. 본래는 사리를 봉안하고 문짝을 만들었는데 탑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상징적으로 형상만 새기게 된다.- 도 있고 탑의 체감비율도 좋다.
? 장곡사
장곡사 들머리에는 장승공원이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하고는 장승공원을 둘러본다. 대단한 양반이다. 어찌 내가 올 줄 알았을까?
일주문을 차로 지나쳐가니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시간도 부족하다. 그래도 차가 절 밑까지 들어가고 또 입장료도 없는데 보물을 6점이나 간직하고 있으니 대중에게는 최고의 호사다 할만하다.
장곡사에는 무려 국보가 2점, 보물이 4점- 국보로는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58호), 미륵불괘불탱(300호)이 있고, 보물로는 상대웅전(162호), 하대웅전(보물 제181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174호), 금동약사여래좌상(337호)이 그것이다.- 이 있고, 대웅전이 상하 2개가 있어 특이하다.
상대웅전에서 본 하대웅전과 전각들이다. 경사가 제법이고 터가 그리 넓지 않아서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앉았다.
장곡사는 칠갑산에 있는 절로 신라 후기 보조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조선 정조 1년(1777) 고쳐 짓고 고종 3년(1866)과 1906년, 1960년에 크게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략) 상·하 대웅전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하대웅전은 상대웅전보다 훨씬 낮은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지은 것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소박한 맞배지붕에 화려한 다포 양식을 가미한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건물 안쪽에는 상대웅전이 전돌을 깐 것과 달리 마루를 깔았고 불단에는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을 모시고 있는데, 이는 고려 후기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동약사여래-손에 약함을 들고 있다.-좌상은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넙적한 머리(육계)는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은 단정하고 우아하지만 통일신라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미소는 사라지고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두터워 보이며 어깨는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보인다. 옷자락에는 굵은 주름이 듬성듬성 새겨져 있고, 배에 있는 띠매듭은 율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데 손톱 모양까지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불상의 신체는 늘씬하게 균형이 잡혀 있으며 넓은 무릎으로 인해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1959년 불상 밑바닥을 열고 조사하다가 불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연도를 적은 발원문이 발견되어,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고려시대 불상임이 확인되었으며 충청도 지역에서 유행하던 고려 후기 불상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하대웅전 한켠에 있는 탱화가 재미있다. 단순히 불교세계만 표현되어 있지않고 현실을 반영하는 모습이 아래 부분에 그려져 있다.
상대웅전은 바닥에 벽돌을 깐것을 제외하면 건축 형식은 하대웅전과 거의 같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철불좌상은 나무로 된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거대한 사각형의 돌로 만든 대좌(臺座) 위에 높직하게 앉아 있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아담하게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둥글고 단아한 모습이다.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편이지만 양감이 풍부하지 않고 탄력적인 부피감도 줄어 들어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도록 하고 있으며, 무릎 위에 놓인 왼손에는 약항아리가 얹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싼 옷은 느슨하게 처리되었고, 옷주름 또한 드문드문 표현되었다.
4각형의 대좌는 불상보다 훨씬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중·하 3단 형태의 이 대좌는 하대가 넓고 높은 반면에 중대와 상대는 상대적으로 낮고 작은 편이다. 바닥돌은 매우 넓은 편인데, 사방 모서리에 기둥을 세운 흔적이 있어 불상을 모시던 공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새기고 각 모서리에는 귀꽃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다. 중대의 각면에는 큼직한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상대에는 활짝 핀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광배는 원래 돌로 되었을 것이나 파손되어 조선시대에 나무광배로 대체한 것 같다. 광배 중심부에는 꽃무늬, 주변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어 신라말과 고려초에 유행하던 광배를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불상은 특이한 탑 모양의 대좌와 감실형의 구조, 그리고 단아한 철불양식을 보여주는 9세기 말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초의 뛰어난 불상으로 평가된다.<문화재청>
중앙에 있는 비로자나불은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에 자리잡은 장곡사의 상대웅전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으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삼각형에 가까운 작은 얼굴에는 긴 눈썹과 가는 눈, 작은 코와 입 등이 표현되어 다소 세속화된 모습이다. 어깨는 넓지만 볼륨은 약화되었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싸고 있는데, 드러나 있는 오른쪽 어깨가 너무 소홀하게 처리된 느낌이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이는 비로자나불만이 취하는 독특한 손모양으로 부처와 중생이 하나라는 의미를 지닌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원래의 것이 아니라 석등 대좌를 가져다 놓은 것으로 불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색한 모습이다. 부처의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머리광배·몸광배 안에 꽃모양의 장식이 채색되어 있다. 광배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채색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옆에 놓여 있는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제58호)의 광배와 같은 양식이다.
전체적으로 평범한 얼굴, 빈약한 체형, 허술한 오른쪽 어깨의 처리 등에서 9세기 중엽 비로자나불 양식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과 거의 같은 유형의 작품으로 보인다.<문화재청>
약사불을 모신 전각은 약사전이라 하고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은 대적광전 또는 비로전이라 하는데 2곳의 전각 모두 대웅전-은석가불을 모신다. -이라 한 것은 따로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절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법당 마당에 그림을 걸어놓는데 이것은 괘불이라한다.-괘(掛, 걸다)佛, 큰 두루마리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평소에는 잘 볼 수없으니 사진으로라도 구경하자.(이것도 국보다.)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왔다.
마침 날이 좋았다. 문화재 말고 사진 몇 장 더
? 도림사지삼층석탑
네비는 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찍어줬다. 그래도 네비는 왼쪽 사진이 보이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차를 주차하고 길을 따라 올라가면 두번째 사진을 만난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오른쪽 표지판을 만나게 되고 정상 방면으로 계속올라가면 된다. 출발지로 부터 약 1km 정도 올라가면 도림사지가 있다.
산이라 경사가 있어 올라가는 길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절터에 도착하기 전에 석축이 보이고 그 위에 예상을 벗어나는 큰 절터를 만나게 된다.
탑은 신라탑 형식을 충실히 반영한 고려시대탑이다. 기단이나 몸돌, 지붕돌의 체감비율이 좋아 아담하면서도 상승감이 돋보인다.
? 청양서정리9층석탑(보물 18호)
청양 정산면 소재지 들판 한켠에 있다.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부근에 고려시대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주위에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을 뿐 다른 유물들은 찾아볼 수 없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돌려 새겼는데, 바닥선이 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양식상 특징을 드러낸다. 윗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그 위로 알맞은 두께의 돌을 덮어 안정된 모양새를 띠고 있다. 탑신 1층이 큰 점이 특징적인데, 2층부터는 높이가 뚜렷하게 줄어들지만 넓이는 크게 좁아지지 않아 우아한 느낌이다. 지붕돌은 아랫면에 1층은 5단, 나머지 층은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가 약간씩 치켜올라가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9층이나 되는 층수로 인해 형태가 매우 높아져 안정감이 부족하다. 각 부분의 세부적 조각양식이나 기단의 안상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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