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불교 문화재

부여_무량사

그저 물처럼 2019. 4. 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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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 無量寺는 행정구역상으로는 부여군이지만 보령에서 가까워 성주사지와 함께 답사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때문에 무량사는 항상 "다음에"로 미루다가 고군산군도를 가는 길에 들러가기로 했다.

아직 이른 봄이라 한산하다.

매표소에는 카드를 받지 않는다면서도 당당하다.

 

일주문을 들어서서 사천왕문까지는 걷는 맛이 일품이다.

 

사천왕문 오른쪽에는 당간지주가 있다.

절에서 어떤 행사가 있거나 할 때 깃발(당 幢)을 달아 알리는데, 당을 단 기둥을 간 竿이라 하고, 이 장대를 지탱해 주는 것을 지주라 한다.- 쉽게 국기봉을 생각하면 되겠다.- 아래 사진은 청주 용두사 철당간이다. 간은 아마 대부분 목재나 대나무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지금은 철당간이나 돌당간 몇 기를 제외하면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혹 대웅전 등의 건물 앞에도 이 형태의 지주가 있는데 이것은 당간지주가 아니라 괘불을 걸 때 사용하는 괘불대이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천왕[<지국천, 동, 칼>, <광목천, 서, 탑>, <증장천, 남, 용과 여의주>, <다문천, 북, 비파>]을 지나면 넓은 절마당을 두고 석등과 탑, 그리고 극락보전이 나란히 있다. 요즘 절에는 부처님 오신날이 되기도 전에 연등으로 장식하고 있다. 아마 매년 설치와 해체를 반복하기에 경비 문제가 있을 터이지만 오롯이 문화재를 감상하는데는 알록달록한 등들이 시야를 혼란시킨다.

 

석등(보물 233호)과 오층석탑(보물 185호)- 문화재청 자료

 

무량사 법당 앞뜰에 세워져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받침돌은 연꽃 8잎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받침은 기둥으로 길게 세워져있으며 그 위로 연꽃이 새겨진 윗받침돌이 놓여 있다. 화사석은 8면 중 4면은 넓고, 4면은 좁은 형태로, 넓은 4면에 창이 뚫려 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의 치켜올림과 처마의 경사가 잘 어울려 경쾌한 모습을 보여 주며, 꼭대기에는 자그만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감이 있으나 경쾌한 곡선으로 인해 무거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래·위받침돌의 연꽃조각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화려한 연꽃무늬와는 차이가 있고, 각 부분이 형식적으로 흐른 감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인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1단으로, 둥글게 다듬은 두툼한 석재를 포함한 층단으로 괴임을 만들고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웠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몸돌은 지붕돌에 비하여 높이가 낮은 편이나 전체적으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돌과 밑의 받침은 딴 돌로 구성되어 있고 받침의 수는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낮은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백제의 기법이 이어졌고 통일신라의 시대적인 양식도 계승되었다.
해체공사를 할 때 탑신의 1층 몸돌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는 금동보살상, 5층에서는 사리구(舍利具)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극락전(보물 356호)과 소조아미타삼존좌상(보물 1565호)

극락전이니 안에 모신 불상은 아미타불이다. 소조(흙으로 빚은)아미타(극락을 관장하는 부처)삼존(3분)좌산(앉아있는 모습)

 

이 설명도 문화재청의 것을 옮긴다.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이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신라말 고승 무염대사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었으며, 김시습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아래층 평면은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기둥 사이를 나누어 놓았는데 기둥은 매우 높은 것을 사용하였다. 위층은 아래층에 세운 높은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벽면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는 그 얼마되지 않는 낮은 벽면에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문을 설치했었는데 지금은 나무판 벽으로 막아놓았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중층전각으로 이루어진 극락전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17세기 대규모 사찰에서 널리 조성되었던 대형의 소조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삼존상은 아미타·관음·대세지라는 분명한 아미타삼존 도상을 보여주고 있고, 이미 발견된 복장발원문을 통해 현진(玄眞)이라는 조각승과 1633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후기 조각사 연구는 물론 조각 유파 연구에도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거대한 규모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불신의 전체적인 모습이 도식적으로 단순화된 감이 있으나 양대 전란 이후 자존심과 자신감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던 당시 불교계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전반기 대형불상에서 삼신 또는 삼세불상이 결합된 삼존형식이 대부분인 가운데, 극락전의 주존으로 아미타·관음·대세지보살이 결합한 삼존도상의 드문 예로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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